2013년 12월 6일 금요일

2013 야구 이야기...

올해 야구를 정리할려고.
몇번 썼다 지웠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예전같이 쉽게 써지지가 않는 것도 문제고.
나이가 한살 한살 많아질수록.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은데.
그냥 내가 좋아하는 두팀의 이이기가 전부다.

Boston Strong!!
















많은 보빠들은 시즌 시작할때 우리팀이 우승할 전력은 아니구나.
나도 시즌 초반만해도 타순을 보고 이거 올해도 글렀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왠걸.
월드시리즈 중에 기억나는 장면 몇가지.
1,2차전 오티즈의 홈런과 시리즈 내내 엄청났던 타격.
4차전 때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놔왔던 곰즈의 홈런.
그리고 6차전 때 래키가 감독 올라왔을 때 he's my guy라고 외쳤던것.
결국 볼넷 내주고 내려왔지만.
그때의 래키의 역투는 대단했다.
그리고 말할수 밖에 없는 우에하라.
요미우리 있을때는 솔직히 별로 안좋아했고.
한참 실황할때 포크볼 능력치가 사기라고.
그런 맘뿐이였는데.
예전의 구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한 스플리터.
덤으로 우에하라 주니어가 crazy라고 말하는 건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했다.

최근 기억밖에 없지만 올해는 한국야구보다.
메이저리그를 열심히 챙겨봤다.
추신수게임을 매일 보고 류현진 게임을 5일에 한번씩 지상파에 볼 수 있다는 건.
예전 박찬호가 열심히 할때 이후로 느껴본 기분좋음이였다.

88689의 한화 이글스.
















내인생의 최고의 직관 2013.10.05.
바티스타가 8회까지 노히트를 했었다.
더구나 티켓도 엠스플 퀴즈에 당첨돼서 좋은 자리에 앉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야구를 봤다.
난 한화가 내년엔 잘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않는다.
뭐 fa로 정근우, 이용규를 데려왔다고 해도 난 기대를 안한다.
난 한화 이글스가 내년에도 9위를 해도 뭐 이팀에 대한 마음을 떠날 이유가 전혀없다.

내년이 기대되는 건 뭐 새로운 야구가 시작된다.
이런 거다.
내년 4월이 되면 난 여전히 들뜬 마음으로 대전 야구장을 갈꺼다.
적어도 직접 볼 수 있는 야구를 나에게 가져다 주는 건 저팀뿐이다.

한화이야기는 뭐 쓸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뭐 그렇다.

너무 어설프게 이야기 한면은 있지만.
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올 한해 야구 이야기는 저게 전부다.

늘 이맘때 써먹는 야구 명언이 있는데.
그게 전부다. 내마음은.

People ask me what I do in winter when there's no baseball.
I'll tell you what I do. I stare out the window and wait for spring.
-Rogers Hornsby-

2013년 12월 2일 월요일

게임이야기...

오늘 오랫만에 워3 장재호 게임을 보고.
정말 울컥했다.
영삼이가 훌륭한건 누구나 알지만.
마지막 경기인데 마킹 취소하고 팅커 타워링이라니.
마지막 wcg 워3 대회라서 참.
이제 e-sports에는 롤판이라.
스타나 워3는 한물 간게임이지만.
그래도 스타와 워3를 너무 좋아했던
나에게 남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는 뭐 지금 스타2 말고 스타1이야기.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다들 친구들이 스타를 하면서 피씨방을 전전하던 시절.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형이 군에서 휴가 나올때마다 온게임넷을 보는게 이해안되기도 했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던가 서지훈이 올림푸스 스타리그에서 우승하는 걸 보고.
아 이거 재밌다. 정말.

그 이후로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게임은 스타뿐이였다.
워낙 게임에 재능이 없어서 배틀넷만 들어가면 지기 일쑤였지만.
그것보다 더 재밌었던건 온게임넷과 엠겜을 매일 같이 보는 것이였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프로게이머는 강민이였다.
할루시네이션 리콜은 정말 잊지 못하는 이야기



이것말고도 커세어 리버 수비형 프로토스를 완성시킨 박태민과의 게임이나.
그전에 조용호와 게임에서 기요틴에서 질럿 엠신공.
임요환에게 항상 강했던 강민은 여전한 나에게 최고의 프로게이머다.

워3도 형덕분에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언데드를 프로게이머들이 많이 하길래
언데드로 시작했다가.
이건 뭐 너무 어렵고 구울이 이게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유닛이지
나무나 캐면 되는 거 아닌가.
야언좃을 너무 일찍 느꼈었다.
휴먼으로 종족을 바꾸게 된건
마킹의 썬더볼트와 라이플맨 너무나도 좋았고.
박세룡이라는 휴먼 유저의 게임을 보고 정말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다가 군대에 있는 동안 엠겜에서 맵조작사건들이 벌어지고.
워3 방송이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엠겜에서 리그가 잠깐 생겼다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때였던가.
아프리카에서 여전히 워3리그가 계속 되는 걸 보고.
아 이게임을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걸 느끼고 방학내내 나이스게임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후에 쥬팬더 방송을 보고 아 해외리그는 계속 되는 구나.
그러면서 얼마전에 고인이 된 고스페이스의 게임을 보면서 울기도 했었고.
몇안되는 휴먼 유저인 이종석이나 노진욱 게임을 보면서.
안되는 능력이지만 베틀넷에서 아메컨트롤을 할려고 노력했었다.
지금은 뭐 워3를 실행시켜본지 오래지만.
오늘 장재호게임을 보고 아쉬움이 너무 많아서.
예전같으면 영삼이도 쉽게 발랐을텐데...


이랬던 장재호였다. 저건 정말 말이 안되는 컨트롤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나도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를 다할 자신은 없다.
다음번에는 올해 야구 이야기를 길게 한번 써보겠다.






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루시드폴, 이적, 정준일.

좋아하는 가수들의 앨범 러쉬가 계속 되었는데.
평소 이런 가요만 듣는 성향탓에.
내가 음악 듣는게 어디 자랑할 이야기도 안되지만.
그래도 저 가수들 노래 들으면서 위로받았던 기억들이
차츰차츰 생각나서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루시드폴 앨범은 거의다 좋아하는데.
은행나무 숲.사람들은 즐겁다.마음은 노을이 되어.봄눈.어디인지 몰라요...
이번앨범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햇살은 따듯해.
솔직히 상황이 상황인지라.
4집을 처음들었을 때의 행복감은 5집이나 6집이 채워주지는 못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이번 앨범 가사를 본 순간.
여전하구나 루시드폴 이런 생각 뿐이였다.














이적 노래는 잘 챙겨 듣지 않았는데 3집부터 챙겨 들었다.
형이 알려줘서 들은 3집에 무대는 이적 베스트 중에 하나고.
다행이다 이 노래는 너무 결혼식 축가가 되어 버려서 아쉽기도 하다.
3집부터 내리 5집까지 이적만의 가사가 주는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노래들.
4집에 빨래나 5집 타이틀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노래들은 옆에 두고 듣는 노래들.















정준일 이번 싱글 새겨울은 제대후에 나온 한곡이 들어있는데.
창피하게도 난 술만 먹으면 친구 한놈이랑 안아줘, 괜찮아를 꼭 들으면서 따라 부른다.
메이트 시절의  너에게 기대, 이제 다시, 긴 시간의 끝, play이런 노래도 너무 나도 좋아한다.
이제 다시를 3년전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들었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는 못느끼겠지만.
여전히 정준일 내지르는 목소리는 참 김동률에게 느꼈던 그것 이상이다.


이런식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뭐라고 얄팍하고 얄팍한 나의 귀일 뿐인데.
어쨌든 이 가수들 덕에 다음달에 콘서트 갈 이승환 노래는 거의 재껴 놓았다.
빨리 이승환 앨범이나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얼마전에 눈이 많이 왔을 때 느낀 건데.
난 이제 눈이 와도 아무렇지 않다.
예전같이 찌질거리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아니 불행인가.

2013년 8월 3일 토요일

꿈...




나에게 꿈이 없다고 힘들어 한 시간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저 드라마의 저 선생님처럼
말해주는 어른들은 우리주변에 왜 하나도 없었을까.
 
나의 꿈을 찾은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불안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
이런 생각뿐인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작위적인 설정에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로 가득찬 드라마지만
그래도 난 좋았다.
 
김창완씨 말처럼 열두살은 열두살을 살고,
열여섯은 열여섯을 사는게.
내 삶의 완성과 행복은 
지금 이 순간 이루어 질 수 있는 거니까.
정말 그런거니까...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不在.

그곳에 있지 아니함.

이 말이 요새 계속 걸린다.
마음에 빚이 계속 생긴다.

난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내가 없는 곳에 대한 미안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잘 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2013년 6월 8일 토요일

내 몫.

나에게 주어진 것.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몫이라는 말로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글쎄.
자신의 몫을 자기 스스로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것 같다.
우리는 속된 말로 주제도 모르면서.
많은 것을 원할려고만 한다.

흔히 중용이라는 말로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바른 길을 여러 철학에서 제시하지만.
철학이 내 머리와 내 마음속에는 들어올 수는 있어도.
그걸 생활의 잣대로 살아가기는 정말 쉽지가 않다.

과하지도 부족하지 않은 걸 바라는 것.
그게 무엇일까?
그저 현실은.
나를 나에게 없는 것들만 바라고 있는 나를 만들면서도.
간혹 다른 사람의 끊임없는 자기 욕구를 보면.
뭐 저런 사람이 있을까 하면서 화를 냈다가.
결국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나를 만들기도 하고.

사는게 갖고 싶은 것과 갖지 못하는 것의 중간을 지켜서 살으라는 이야기.
혹은 이와 다르게 하고 싶은것만 하라는 이야기.
두 이야기 모두 쉬운 건 정말 아닌 듯.

이렇게 재미없는 이야기를.
지금 나는 왜 쓰고 있는지도 까먹고 있는데.
그냥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새벽.
(내가 글을 쓰면서 내가 감동 받는 이야기를 쓴적이 있나 싶지만...)

2013년 5월 17일 금요일

나의 종교

오늘은 불기 2557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
우리 부모님은 절에 다니신다.
물론 나도 불교를 좋아하고 이력서 종교란에 불교라고 적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오늘 난 절에 갈 것 같지는 않다.
나의 종교를 불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법정스님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였을 것 같다.
형이 무소유라는 책을 알려줬다.
복원 불국사라는 한자로 시작되는 목차부터 신기했다.
그리고  本來無一物이라는 말.
수연스님 이야기.
너무나도 좋은 이야기들로 가득차있어서 읽고 읽었다.

나는 이미 어릴적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에 가곤 했다.
그러면서 여러스님들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때 집에 쌀이 떨어지면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쌀 한가마니 보내주셨던 스님.
고3때 왜 이렇게 어렵게 사냐고 날 울렸던 스님.
군대갈 때 춘천까지 몸소 따라가셔서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신 스님.
시험날 시험 잘봤냐고 한 걱정으로 음성메세지 남겨주시는 스님.
이런 스님덕에 난 너무 행복했었다.

그렇게 나는 불교가 좋아졌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종교는 우리가 만든 것이구나 이런 생각이 머리속을 지배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그냥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법정스님이 좋아했던 말중에
'사는게 구름이 생기는 것이라면 죽는 건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하나에 위로 받으면서.
난 오늘도 나의 종교는 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2013년 3월 31일 일요일

너무 많이 뱉어 놓으면.

항상 후회가 있다.
오늘도 그런 날.
난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들었나.
즐거운 대화였지만 깨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 마음 한자리가 불편하다.

2013년 3월 22일 금요일

조카와 나

나에겐 예쁜 조카 세 명이 있다. 그 중에 한 명과 용기내서 병원가기 전날 한 장 찍었다.
지금도 사진의 저 아이의 형은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요즘 매일 매일 그 아이랑 지내느라 힘들긴하다.
House에서 소아과 의사가 I hate kids라고 했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갈 정도였다.
그래도 자기전에 무서운 꿈 꾼다고 삼촌 손잡고 자고 싶다고 할때는
눈물날 정도로 고맙고 예쁘다.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세상 모든 사람이 불행해도
나에게 있는 세 명의 조카에겐 불행의 그늘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서른 즈음에.

괜히 혼자서 맥주 두캔을 먹었다.
그래서 일수도 있겠지만 십년전부터 생각했던 이 순간이.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어찌보면 모든게 그런 것 같다.
다가 올 순간에 대한 기대는 그렇게 크면서도.
막상 닥쳐왔을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순간들을 보내게 되는 것 같다.

2012년 내가 좋아하는 숫자로 시작된 작년은.
쉽지가 않았다 모든게.
행복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새해를 맞이하니.
그렇게 살았구나. 올해는 좀 더 행복해지자.
이런 마음뿐이다.

서른이라는 나이.
而立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나이.
말 그대로 서있을 수 있는 나이.
그런 나이를 나도 말 할수 있게 되어서.
불안하고.
답답하고.
서글프기도하지만.
살아가고 있구나 나는.

서른에는 그랬으면 좋겠다.
공부를 더 할 수 있게되면 좋겠다.
가족들에게 더 잘했으면 좋겠다.
행복이 내 주변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오래전부터 해온 이야기인데.
내가 바라는 나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2년 12월 15일 토요일

욕망해도 괜찮아?

이 곳에 그동안 열번넘게 글을 썼다가.
자고 일어나서 혹은 글을 쓰고 한시간 뒤에 다시 지워버렸다.
어제도 길게 써놓고 지워버렸다.
이것도 지워질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얼마전까지 아니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
욕망해도 괜찮아.
이렇게 이야기하고도 읽을려고 맘만 가졌을 뿐.
찾아 읽지는 않았다.
그런데 욕망해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입이 닳도록 수다를 떨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가 쓸 수 있는 일정량의 돈이 생겼다.
난 내가 그동안 사고 싶던 것들은 세시간에 걸쳐 전부 구입했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왜 기분이 안좋은지 모르겠는데.
나를 둘러싼 것들이 그리 편하게 이런 나의 모습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지나치게 현실적인 문제가 더 크게 보인다.
아니 더 크게 몸에 부딪힌다.

내가 오늘 세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서
내가 정말 필요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고 여기는 것들을
사고 있는데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나에게 너무 쉽게 기대를 가져다 주지지도.
기분 좋음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왜 그럴까?
미국에서 지낼 때 좋게 생각했단 말이.
it's your job.
이 말이였는데.
니가 할게 이거라고.
니가 가지는게 이거라고.
너의 몫은 이거라고.
그런데 지금 내가 하고.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욕망해도 괜찮을까?
아니면 욕망를 가져야 살기 쉬운 걸까?

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솔직하게 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면.

기분이 풀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너무 솔직해지지 않아야겠다.
무언가를 이야기할때.
적어도 우리가 뱉어내는 모든 말속에 가득찬.
거짓과 과장을 보태야 한다.
아무것도 더해지지 날 것 그대로의 것은 때론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듣는이도 말하는 이도.

이건 단순한 우리 주변의 모습일 수도 있다.
컴퓨터를 들여봐도.
tv를 봐도.
신문을 봐도.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세상에서.
누가 지어낸 혹은 누가 덧댄 이야기들을 궁금해하지 않으면서.
아니 깊이 들여다 보지 않으면서.
살아가는게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절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모든 사람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불쌍하다.
사연없는 사람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 하나 없고.
괴롭지 않은 사람 없다.
그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니 괴로우니까 사람이라니 힘든 게 삶이라니
나보다 많은 세월을 보낸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너무 무책임하다.
나도 이제 저런말들을 다른 누구에게 하지 말아야 겠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으라니.
자기는 더 힘드니까.
그냥 우리는 불쌍한 존재인데.
당신이 힘든만큼 다른 사람은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말같지도 않은 이야기.
모든게 쓸모없는 이야기다.

그냥 우리는 불쌍하고 불쌍한 사람인 것 뿐.
말도 안되는 이런 이야기를 적고 있는 나도 그런 불쌍한 사람.

2012년 9월 7일 금요일

deja vu...

지긋 지긋한 이 감정.
반복과 반복.
그러면 그럴수록.
작아지는 내 모습.

2012년 1월 25일 수요일

27.may

5월.
5월 12일.
5월 27일.
그 날 내 모습에 눈물 짓지 않기를.
그 날 나에게 새로운 희망이 가득차기를.
그 날 너에게 나를 말할 수 있게 되기를.

2010년 11월 12일 금요일

하고 싶은 것.

아 하고 싶은 것 정말 많다.
생각하기 지칠 정도로 하고 싶은 것들은 참 많다.
그런데 항상 그 반대편에서는 하고 싶은 것들이 할 수 없는 것들로 변해간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런 찌질한 변명이 아니라.
그렇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조금만 더 있다 보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고.
또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생기면서.
어떤날에 참 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이였는데 못했을까에 대한 아쉬움에.
한숨쉬고, 그리워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물론 모든 것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날 우연히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조금 마음이 답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과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고

내가 해야하는 것과.
내가 하지 못한 것과의 거리도 생각보다 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것과 내가 하지 않는 것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2010년 11월 5일 금요일

Walk-off home run.

끝내기 홈런을 walk-off home run이라고 한다.
야구를 보다보면 종종 이런 상황을 보게 된다.
내가 응원하고 있는 팀의 4번타자가 치는 끝내기 홈런.
4번타자가 아니여도 좋다.
내가 응원하고 있는 팀의 타자가 경기를 마무리 짓는 홈런.

얼마전에 본 야구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들이 몇일 동안 맴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한번쯤 들어본 말일 것이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사람이 점수의 기준이 된다.
쉽게 말하면 선수가 1루 2루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와야 1점이다.
공을 쳐서 수비하는 선수가 잡을 수 없는 공이 된 홈런의 경우에도 선수가 홈 베이스를 밟아야.
점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나가서 사람이 들어오는 운동경기가 야구다.

그 야구 프로그램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야구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홈을 가지고 몇가지 이야기를 했다.
홈. home. 말 그대로 집이다.
집을 나가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서 탓닉한 스님이 직접 쓴 have I arrived? am I home?
이 글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유명한 야구선수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홈을 들어왔는지 물어본다.
어떤 선수는 2루에 있다고 하고.
어떤 선수는 2루와 3루 사이.
어떤 선수는 아직 1루도 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끝내기 홈런이야기를 해야겠다.
끝내기 홈런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퍼펙트 게임이니 노히트 노런이니 이런 것들은 더욱 보기 힘들다.
내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도 끝내기 홈런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극적이고 감동적인 일들은 찾아오기가 힘든 것 같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배팅 훈련이 되지 않아서.
혹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지 못해서.
혹은 내 앞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의 공이 너무 훌륭해서
다시 말해 내 주변의 사람이 나보다 나아서.
결국 오늘 내 이야기는 내가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난 너의 마음을 알아?

정말 오랫만에 이곳에 글을 남긴다.
잠도 오지 않고.
이것 저것 생각도 들고.
오랫만에 라디오도 듣고.
그래서 몇자 적어 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평소 날짜를 잘 기억하던 나는.
내가 언제다시 이곳으로 왔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언제인지 쉽게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느낀 것들은 정말 너무나 많다.
지금 당장 적어보라면 밤을 새야 할 것 같다.
많은 일들도 있었다.
순간 순간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미국에 있는 몇 안되는 지인들의 소식도 고마웠다.
몇일전부터 머리속에 맴도는 생각을 하나하고 그만 적어야 겠다.

우리는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구나.
각자의 위치.
각자의 생각.
각자의 경험.
각자의 지식.
이 모든게 우리를 힘들게 하고

남을 이해시킨다는 것.
남의 마음을 내 마음과 같이 하게 하는 것
남의 마음을 생각한다는 것.
이건 정말 생각 보다 쉽지 않은 것이구나.

같은 것을 보고.
전혀 같지 않은 생각을 하긴 쉬워도.
다른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기는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결국 끝에 드는 생각은 그저 입조심.
또 하나는 아쉬워 하지 말자는 것.
남이 내 마음을 모른다고 내가 너의 마음을 모른다고 해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는 존재일까?
아니 적어도 모든 말, 모든 행동의 끝은.
자기 자신을 향해서 있는 것들 뿐일까?

2010년 9월 9일 목요일

한번씩.


가본 도서관이 한 3군데 정도 된다.
그리고 도서관 카드도 만든 곳도 있다.
뭐 그렇다고 해도 그 후에 가본 적은 없는 듯.
재미없게 도서관 이야기를 하려니.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아 도서관 이야기는 여기까지.
지금부터 나이아가라 폭포,시더 포인트, 도요타 파크 이야기를 짧게 하고.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나이아가라 폭포.

정말 말도 안되는 대륙스케일의 폭포.
괜히 세계에서 제일 큰 폭포가 아니구나 느낀.
더구나 그 속에서 보는 불꽃놀이의 추억은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시더 포인트.

난 솔직히 놀이 기구 이런걸 잘 타지 못한다.
뭐 많이 타본 적도 없고.
겁이 워낙 많은 사람이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을 갔다 온 이후로는 무엇이든 탈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상상원정대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엄청난 놀이 기구들이 가득했다.

도요타 파크.

시카고 파이어스의 홈구장.
축구 경기장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야구, 풋볼, 농구 이런 메이저 스포츠의 경기장은 참 먼데.
이곳은 참 가까웠다.
축구가 여기는 인기가 없다.
아니 뭐 멕시칸들 덕분에 MLS가 버티긴 하는 것 같다.
멕시칸들에게 축구는 종교와 같은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피곤해서 대충 써야겠다.
내일 마지막으로 길게 이곳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

2010년 9월 8일 수요일

467일 동안의 내 모습.



계산을 해보니 대충 467일정도가 된다.
이곳에서 산 시간들이다.
어제 말했듯이 오늘은 참 찌질한 내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다.
앞으로 여기서 3일정도는 더 있을 것 같으니
470일 정도 이곳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냥 깊은 생각 없이 이곳에 몇장의 사진과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곳에 처음 온 순간 느낀 건 두려움 뿐이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되지.
난 정말 영어라는 걸 공부해본적도.
좋애해본적도 없는 데.
왜 내가 이곳에 와서 살고 있을까.
지금의 내 영어 실력도 워낙 부족하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말도 못하는.
그리고 모든게 두려운 상태.
특히 학교를 처음 다녀온날 버스를 잘못타서 집을 해맸던 일이나.
뭐 중간 중간 적응이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면서 사람이 점점 작아지고.
집밖에 나가기 보다는.
그냥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이였다.
그러면서 워3만 천게임 넘게 한 듯하다.



아 이게 뭔가 싶다.
막상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한심하고 부끄럽다.

이곳에 산지 한달이 지났을 무렵 주말마다.
가게에 나가서 일을 배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 주말에는 일을 나갔다.
일을 나가서도 하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는게 전부였다.
말을 걸기도 무섭고.
하나 같이 어려웠다.
그리고 매일 매일 지쳐가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엄청 고생한 건 아니다.
3달이 지나고 부터는 토요일 하루정도만 나가서 일을 했다.
그래도 내가 직접 돈을 벌고 그러는 것은 아니였다.
어쨌든 그렇게 된 후에 올해가 되서 처음으로 월급을 받고 일주일에 4일씩 일을 했다.
짧은 영어라 힘들기도 했지만 나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저번주까지 일을 했지만.
그때까지도 내 영어를 못 알아 듣는 손님은 꽤나 되고.
못 알아 듣겠다고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 하면 안 되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것을 처음 느낀 순간 난 정말 울고 싶었다.
이런 순간 순간들이 반복될수록 뭐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분은 안 상할 수가 없었다.
정말 쉬운 단어도 못 알아 들을때는 정말 짜증이 났다.
이와는 반대로 항상 나에게 잘해주는 손님도 많았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내가 일하지 않을 때면 일하는 다른 사람한테.
그 중국 사람 어디갔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내가 있을 경우에는 날 반갑게 맞이하기도 했고.
내 짧은 영어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을 4일씩 하게 되면서 학교를 중간에 옮겼다.

내가 예전에 다녔던 학교는 커뮤니티 컬리지였다.
그리고 2주전까지 힘들게 힘들게 다녔던 학교는.
아니 따지고 보면 학원 개념이었다.
마음 편하게 일주일에 2번 정도만 다녀도 문제가 없는 곳이였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그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그냥 그냥 지내도 큰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일요일은 쉬고 월화수토는 일을 하고 목금은 학원을 다녔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쉬움은 크다.
내가 더 열심히 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사는 곳은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차로 40분정도 떨어진 교외도시다.
다운타운에 있는 학원을 난 8개월 정도 다녔다.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한국의 지하철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지는 않다.
그래도 난 지하철을 잘 이용했다.



차도 구입하게 되었다.
아주 싼 차고 뭐 오래된 차지만.
그래도 차 덕분에 편리하게 3개월정도를 지냈다.
시카고 다운 타운에 있는 곳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밀레니엄 파크.
그 곳에 큰 조형물인 클라우드 게이트를 난 정말 좋아한다.
반사되는 내 모습.
그리고 반사되는 이 큰 도시의 모습을 직접 느끼면.
기분이 꽤나 좋다.
학원을 갔다가 기분이 우울하면 종종 가보고 그랬었다.

오늘은 조금 바빴다.
아침부터 여기 저기 다녀왔다.
내일부터는 또 가기 전날까지 짐도 싸야하고.
이것 저것 살 것도 있고.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다 집으로 돌아갈 것 같다.


오늘도 정리 되지 않은 말들로 가득 채운 듯 하다.
내일은 이곳 도서관 이야기 하고.
그 밖에 이곳에 살면서 다녀온 곳을 쓰기로 하겠다.

2010년 9월 7일 화요일

야구장 이야기.

저번 글에도 이야기 했듯이.
이제 좋았던 이야기들로만 이곳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남길 생각이다.
이곳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항상 티비로만 느낄 수 있었던.
메이저리그 야구장을 직접 갔다온 것이다.
지금까지 총 4번정도 다녀온 것 같다.
유에스 셀룰러 필드 2번.
리글리 필드 1번.
펜웨이 파크 1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펜웨이 일듯.
보스턴은 이곳에서 가까운 도시는 아니다.
그래도 보스턴을 다녀오는게 내 이곳 생활의 어떤 하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기전에 무조건 가야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였지만.
갔다오면서 느낀 생각은 아 또 가보고 싶다.
나중에 성공해서 다시 와야겠다.
이런 맘 뿐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예전에 해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정말 야구팬으로 가득하고.
나나 우리 형이 가장 좋아하는 팀의 홈구장을 다녀온게 뿌듯했다.
펜웨이 이야기는 뒤에 리글리 말할 때 또 할 말이 있다.

유에스 셀룰러 필드 이야기를 해야겠다.
2번이나 갔지만 처음을 제외하고 그리 기억이 남지 않는다.
그래도 펜웨이나 리글리에 비하면 꽤나 신식 구장이고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맘만 먹었으면 10번 이상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내주변 사람들은 야구를 싫어하고.
또 혼자 가려니 시샥스 이 팀도 끌리지가 않는다.
쿠폰까지 구입을 해서 무료 티켓도 있고 그랬지만.
갈 맘이 별로 안생겼다.
그래도 처음으로 가본 메이저리그 야구장이였고.
그때의 떨림은 좋은 기억이다.

리글리 필드.
누가 뭐래도 시카고하면 컵스.
시카고하면 리글리 필드 일꺼다.
정말 이곳도 펜웨이에 이어서 두번째로 오래된 구장이고.
누가 뭐래도 미국에서 인기가 높은 3팀 안에 들어가는 전국구 팀이기 때문에.
내가 펜웨이를 간 것처럼.
많은 사람이 리글리를 찾아 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직접 느끼고 보고 생각한바에 따르면.
보스턴팬들이 최고 인듯 하다.
레드삭스 구단 자체가 펜서비스를 잘하는 게 있을지 몰라도.
야구장 자체도 리글리 보다는 펜웨이가 더 편하다 내생각에는.
리글리의 벽돌과 당쟁이 넝쿨 펜스 오래된 아날로그 전광판.
이게 정말 멋진 건 인정하지만.

두 구장의 명물인 그린몬스터와 리글리의 아날로그 전광판


리글리는 그대로 보존하고 역사를 만드는 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러곳에서 정말 오래된 그대로의 것이구나 느낄정도로 오래되어 보였다.
두개 구장 다 오래된 구장이라 유에스 셀룰러 구장보다 불편한 점이 다소 있다.
뭐 출입구가 적고 그밖의 편의시설이 누가 봐도 리글리나 펜웨이가 불편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뭐 내가 자주갔던 대전구장에 비하면 말이 안되는 거지만.
아 그리고 신기한건 내가 펜웨이에 갔었을 때 보스턴 사람 몇명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다 리글리가 더 오래된 구장으로 알고 있는것이다 세상에.
그런데 생각해보면 딱봐도 리글리가 오래되 보인다.
리플레이나 뭐 선수 화면이 나오는 스크린 조차 없는 구장이 리글리기 때문에.
아날로그 전광판 아래에 선수 기록이 나오는 작은 스크린이 전부였다 리글리는.
그래도 리글리에서 여기서 야구장을 간 것중에 가장 야구를 집중해서 봤는데.
유일하게 홈팀이 이긴 경기라 그런지 몰라도.
정말 사람들의 모습에서 팀에 대한 애정이랄까.
이런 걸 크게 느꼈다.
마지막으로 싸인을 받지 못해 날 우울하게 만든 박사장님 몸 푸는 장면.


정신없게 써서 무슨말을 적은 지 모르겠다.
내일은 찌질하다 못해 처참하고 부끄럽고 한심스런 내 일상이야기를 조금 적어봐야겠다.